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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ing/생산적 책읽기

사피엔스

"인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실 유발 하라리란 작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만, 읽고 나니 대단한 지식을 소유한 글쟁이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이 책의 근간을 구성하고 있는 그의 글쓰는 능력은 한마디로 탁월합니다. 논리 전개가 설득력있고 기승전결의 구조가 명확합니다.
한 마디로 독자로 하여금 설득당할 수 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해서 글쓰는 구성 전개 방식에 있어서는 동 시대의 대단한 글쟁이인 유시민 작가로부터,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총,균,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로부터 찬사를 받았나봅니다.

인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막대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인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각각의 발전 단계를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 '과학 혁명'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아울러 이웃 생명체들에게 각각의 단계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거의 부정적인 영향-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유일하게 세 가지의 혁명을 거치면서 막강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7만 여년 전의 인지 혁명에서는 새로운 사고 방식과 의사 소통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면서, 크고 작은 공동체를 체계적으로 유지하며 다른 생명체가 소유하지 못한 능력인 언어를 사용해 우위에 서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구 상의 거의 모든 거대 포유류를 -다른 인간종들을 포함하여- 멸종시키기에 이릅니다.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 혁명은 여분의 식량으로 인구 폭발과 엘리트의 출현을 예고하며, 현생 인류의 역사 진전 속도를 가속화합니다. 마지막으로 불과 오백여년 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과학 혁명은 인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제국주의의 부흥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하여 자본주의를 잉태함으로써, 결국은 거대한 국가공동체 - 자본과 기술력, 문화로 연결된 - 를 형성하기에 이릅니다.

각각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현대 사피엔스의 전례없는 성취는, 결국 다른 이웃 생물 종들에 대한 착취와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며, 이는 사피엔스의 가장 큰 범죄의 결과물들로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의 내용 중에는 과거의 제국 주의들(중국, 로마, 영국)에 의한 통치로 인하여 서로 다른 문명과의 충돌로 야기된 피 지배계층의 동화 과정을 냉정할 정도로 담담하게 풀어내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예가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 통치가 양 국가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인데, 같은 경험을 통해 고통스럽고 막대한 정신적 충격을 감내해야만 하는 우리 나라와 같은 피해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서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작가가 정치 학자가 아닌 큰 틀에서 보는 문화 인류학자이기에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저자와 무언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사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피엔스>와 <총,균,쇠>를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유쾌한 상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그의 저서 <총,균,쇠>의 한국어 판 추가 논문인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가설 중, 현대 일본인들의 조상이 역사학적으로 비교적 근래에 일본으로 이주해 온 한국인 식량 생산자들이 옛 일본 거주자들이었던 '조몬인'과 '야요이인'들을 몰아내고 대체된 후손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유발 하라리 박사의 <사피엔스>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같은 다른 인간 종들이, 이들이 살고 있었던 새로운 지역으로 도착한 사피엔스에 의해 그곳의 토착 인류가 사라졌거나 밀려난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때문에 유발 하라리 박사는 '총, 균, 쇠'가 사피엔스를 저술하는데 가장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고 하고, 동시에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사피엔스를 극찬했나 봅니다. 두 책이 상호 보완적이며,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나는 이 책이 독자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 p.9
우리는 상상의 산물을 잔인하고 매우 현실적인 사회구조로 바꿔 놓은 사건들, 조건들, 권력관계들을 연구해야만 비로소 그런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다. - p. 213
우리 눈 앞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구 제국은 특정 국가나 인종 집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 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 p.301
우리가 과학자들이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힘든 시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미래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우리보다 진실로 우월한 존재를,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바라보듯이 우리를 무시하면서 바라볼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p.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