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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ing/소리의 황홀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오페라는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입니다.
말, 소리, 동작, 공간, 빛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로서, 한번 맘먹고 감상하기에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 배경지식과 함께 금전적인 뒷받침이 요구되는 문화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할 수록 감동도 커지는 법입니다.


때로는 말도 안되는 엉뚱한 소재거리를 갖고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탐구함으로써 인간 행동의 원천인 내면의 충동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줍니다.
충동구매이든 정말 필요해서 구매한 것이든, 일단 내 소유의 물건이 된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해서든 이용을 해야만 물건 값을 뽑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경험해보니 이러한 종류의 강박관념은 어쩌면 자기개발에 한 몫 할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어느정도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여러번 깨닫습니다.

해서 구입해 놓고도 여러가지 이유로 한번도 감상하지 않았거나, 몇 번 감상했어도 제대로 감상하지 않은 오페라 DVD들을 선별하여 최근 3~4개월간 열심히 감상했습니다. 선별해 놓은 오페라 DVD가 28편이나 됩니다. 한편을 감상하려면 보통 3시간 이상 소요되니 늦은 밤부터 새벽 늦게까지 시청하기가 다반사였는데, 주말 저녁이 부담감이 훨씬 덜했습니다.

연극적인 구성과 연기, 무대장치, 무용, 역할 연기 등, 종합무대예술로서의
오페라를 제대로 감상하기란 그래서 늘 버겁다 

 

 

오페라를 감각적 체험이 되도록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무대 뒤에서 일한다.의상 담당 부서에서는 스케치에서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거쳐 온갖 무대 의상들이 제작된다. - 클라시커 50 오페라 p.14

 

 

그 중에서 오래 전 안나 네트렙코와 롤란도 빌라존이 호흡을 맞춘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과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가 있네요.
두분 다 1972년 동갑내기인데다 함께 공연한 2005년의 실황이었으니 오페라에 있어선 '세기의 연인'으로 세계적으로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 시켰던 공연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가 두 사람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랑의 묘약>에서만 본다면 롤란도 빌라존의 비중이 안나 네트렙코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컸다고 생각되는데, 그만큼 배역에 대한 그의 깊은 몰입감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으며, 호소력이 깃든 시원하며 강인하게 뻗는 고음으로 무장한 극 중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에서는 과연 명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자신의 포스트 빅 3 테너의 선두주자로 그를 꼽을 만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앵콜에 의해 두번을 연이어 부르면서도 자연스러움과 숨가뿐 저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극 중에서 롤란도 빌라존의 저글링(Juggling) 솜씨 또한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극중의 배역에 대한 몰입감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이겠지요. 또한 두 사람의 물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연기력은 할리우드의 배우들을 뺨칠 정도입니다.
무대 장치 또한 19세기 초 스페인 바즈크 지방의 작은 마을을 매우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았습니다.

 

 

 

농부 네모리모로 분장한 롤란도 빌라존의 제 1막 제 1장에 나오는 <아, 어쩌면 저토록 아름다운가!>는 맑고 투명한 미성으로 달콤하게 속삭이듯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 2막 제2장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네모리노가 자기 때문에 속상해진 아디나의 눈물에 기뻐하는 노래인데, 세련되고 힘있는 서정적인 아리아는 이 공연의 백미입니다. (남의 불행이 자기 자신의 행복이 되는군요)

저의 어린 시절, 만병통치약이나 기생충 퇴치약을 들고 차력사나 마술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약장수의 공연을 본 기억이 가물 가물 떠오릅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는지...
그런데 그런 약장수가 이 오페라에서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디나(안나 네트렙코 분)를 짝사랑하지만 용기가 없고 어수룩한 네모리노(롤란도 빌라존 분)에게는 한순간에 불같은 열정에 휩싸이게 만든다는 이 약이 마치 구세주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짐작하셨겠지만 이 '사랑의 묘약'은 싸구려 포도주에 불과한 가짜 약입니다.

 

 

 

 

허나 이 약을 먹고 네모리모는 정말 용기백배하여 소극적인 태도에서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돌변하게 됩니다만.....
이건 아마도 임상실험을 통해서도 자주 입증되듯이, 환자가 그 약의 효능을 믿고 복용하면 약효가 없는 물질도 때로는 약이 되는 기적과 같은 일이 발생하나 봅니다. 그래서 결국 네모리모는 아디나의 사랑을 얻는데 성공하게 되네요.

 

 

 

꼭 1년 전인 2016년 3월에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는 후덕해진 모습의 안나 네트렙코의 최근 모습을 매체를 통해서 보았는데, 빼어난 예전의 미모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의 늙어감은 덜 속상해하면서도 아끼고 사랑하는 유명인들의 늙어감을 더욱 속상해하며 안타까워하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러시아 태생이면서 현재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지고 있는 안나 네트렙코와 멕시코 태생의 롤란도 빌라존의 이 <사랑의 묘약>은 당분간 경쟁 상대가 없을만큼, 매우 뛰어난 공연이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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