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는 건 내가 남긴 기록뿐입니다."
드뷔시의 피아노 곡들을 CD Player 에 밀어 넣습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씨에라 네바다 IPA를 냉동실에 미리 얼려둔 맥주 잔에 따릅니다. 마치 밀려 온 파도의 하얀 포말과도 같이 부풀어 오르는 흰 거품을 바라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책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지금의 이 순간은 매우 행복한 순간입니다.
좋은 음악을 벗삼아 나른해지기 쉬운 오후를 차디 찬 맥주로 일깨우며, 책을 읽고 노트와 이런 저런 몰스킨에 쓰고 정리하는, 나만의 고독하고 영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된 셈입니다.
나름 몰스킨 매니아라고 자처했지만, 이 책은 미처 몰랐던 신선하고 창의적인 내용들로 가득 찬 마시멜로와도 같은 책입니다. (요즘 '창의적'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도 끌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태평양을 건너 온 책이기에 너무 빨리 읽혀지는게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그동안 몰스킨을 너무 엄격한 시선으로만 바라보았기에 정성껏, 그리고 자세히 기록하는 것외에는 치장 한번 안한 멋대가리 없고 밋밋한 몰스킨들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십여년 동안을...
이 책은 몰스킨을 몰스킨답게 활용할 수 있는 저자의 다양한 노하우와 함께, 서로 다른 경험과 직업을 가지고 있는 몰스킨 매니아들의 기록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해서 기록하는게 아닙니다. 기록하면 특별해집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매우 유용했던 활용 비법은 몰스킨 제패니즈 앨범과 일종의 콜라주 기법이라고 할까요? 오리고 붙이고 드로잉을 하면서 몰스킨을 보다 더 창조적인 기록의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매우 신선하면서도 흥분되면서 자극적이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같은 내용이 그 다음에 읽은 책인 대니 그레고리의 '창작 면허 프로젝트' (p. 57)와 후루야마 고이치의 '만년필로 그림 그리기' (pp. 16~18)에서도 언급이 되어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지식의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몰스킨은 달력이고 메모이며 일기입니다. 기록해두면 마치 땅 밑에 묻힌 원유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있는 무언가로 바뀝니다.'
'마음에 담아 둔 이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반질거렸습니다. 박자에 맞춰 철컹거리는 열차, 창으로 스며드는 초여름 햇살, 매콤하게 날리는 석탄 가루, 아이처럼 좋아하는 승객들의 표정까지.
잘 남겨보려고 쓰고, 그리고, 오리고 붙였습니다.'
비록 책을 쓸 재주는 없지만, 책을 재미있게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만들 수는 있습니다. 형광펜이나 포스트잇, 플래그나 페이지 마커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필체가 담긴 자유로운 사고의 낙서가 책 내용에 삽입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원래의 책보다 더 멋있게 꾸며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기만의 책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왜 이 책을 보고나서야 몰스킨도 자기 입맛에 맞게 꾸밀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정말 맛있게 곱씹은 책입니다.
이제 제 새로운 몰스킨 #16과 #17을 준비할 때입니다. 아직 이름을 짓지는 못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책의 영향으로 주문한 한정판 #18~20호도 오고 있습니다.(책을 읽기 전엔 생각도 안해 본 일입니다.) 덕분에 지갑은 얇아졌습니다만, 올 한해 고생했으니까 이 정도 호사는 누려도 되겠지요? 저 자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Moleskine #14 Creative Thinking
'시간이 흘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을때 결국 남는 건 내가 남긴 기록뿐입니다.
기록이란 자신이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꾸밀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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