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ving/오늘(The Present)

내일 일은 내일 일...

새벽 일찍 잠을 깨고 보니 하루 해가 참 길었습니다.
늘 하던 대로 항상 하루를 시작하는 순서는 똑같습니다. 제일 먼저 커피를 올리고 그다음에는 CD를 틉니다.

오랜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던 CD player가 갑자기 오늘 아침에 CD 읽기를 거부합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주 시스템은 무겁고 제법 값이 나가서 팔고, 비교적 가벼운 서브 시스템을 배로 부쳐서 지금까지 장장 15년째 듣고 있는데, 처음 보여준 반항인지라 그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순간, 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마저 들었드랬습니다. 제가 아침부터 갑자기 집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린 이유를 아내는 아직 모릅니다.

사실 요즘 좀 멀리 했었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뮤직과 애플 뮤직의 영향입니다. 이젠 좀 편한 것을 찾아서 즐기다보니 CD를 집어넣는 행위보다는 오디오 기기를 블루투스 기기로 변환시켜주는 장치를 AUX에 꼽아서 아마존 프라임 뮤직과 애플 뮤직을 그냥 그때 그때 찾아서 감상하고 있습니다.

CD나 LP를 갈아 끼우는 수고를 안해도 됩니다. 언젠가는 CD나 LP를 종교의식의 한 관례처럼 정성스레 닦고 경건하게 플레이어에 얹어서 즐겼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편하게 듣고 싶습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만년필도 컨버터보다는 몸통 전체로 잉크를 빨아들여서 한번 잉크를 충전하면 오래쓰는 그런 만년필들을 선호하게되고,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고체 물감과 인스턴트 붓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커피도 정성을 다해서 내려마시는 드립커피나 끓여서 제대로 마시는 에스프레소, 그리고 프렌치프레스보다는 그냥 알아서 해주는 MR. COFFEE가 좋습니다. 예전의 이런 부질없는 행위들이 이제는 느끼게 되는 아침 햇살과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때문에 더 이상 그 의미를 보존하기가 힘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리도 하루 아침에 배반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거짓말 안보태고 한 50번 쯤 리모컨으로 CD를 넣다 뺏다를 반복하니, 거짓말처럼 CD를 인식했습니다. 그때까지 아마존에서 CD player를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와서 말썽없이 음악을 들려주었던 고마움을 잊은데 대한 순간적인 투정이었나 봅니다. 베토벤과 모짜르트,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를 줄창 얹어 놓고 무한 감상합니다.

내일 또 갑자기 CD 읽기를 게을리한다면...

그래서 전원을 아예 켜두고 자려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일...' <글루미 썬데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