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 밀란 쿤데라
출판사 : 민음사
페이지 : 507쪽
“가벼움의 무게, 무거움의 자유”
‘인생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삶의 모든 순간은 엄청난 무게와 책임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니체의 영원회귀가 ‘무거움‘에 해당된다면, ‘인생은 오직 한 번뿐(Einmal ist keinmal)’이라고 단정짓는다면, 인생을 살면서 내리는 어떠한 결정도 비교 대상이 없기에 삶은 깃털처럼 ‘가벼울 것‘이라는 것이 밀란 쿤데라의 생각 같았습니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무거운 삶은 짓눌리지만 실재감을 주고, 가벼운 삶은 자유롭지만 무의미와 참을 수 없는 허무함으로 귀결될 것 같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각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움’이고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거움’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카레닌이라는 개도 있군요. 어쩌면 인간이 타인과의 사랑에서 질투와 불안에 갇히고, 집단적 키치에 휩쓸릴 때, 개 '카레닌'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키치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하면서도 조건 없는 사랑을 내어줍니다.
그리고 '선택한 무거움'에 대한 구원의 해답을, 쿤데라는 이를 평범한 일상의 반복되는 삶에서 얻는 ‘에덴 동산의 행복‘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네요.
그래서 선택한 ‘무거움‘에서 벗어나 실존적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카레닌을 통해 일깨워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카네린에게 책 내용의 1/7 밖에 할애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비중은 ‘가벼움 속의 무거움’입니다.
결국 ‘가벼움이 옳다‘거나 ’무거움이 옳다‘라는 이분법적 해결이 아닌,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이자,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 우리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오래전 이 책을 읽고 - 특히, 사비나와 프란츠의 삶에서 - 저는 책에서 언급된 키치(Kitsch)라는 용어를 ‘反앙가주망’과 연결시켜서 개인 SNS에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양극화‘와 진영 논리를 보면서 이 책의 문학적 가르침에 힘 입어 ‘키치적 선동’에 놀아나는 ‘잘못된 앙가주망’을 경고하게 만들게 되더군요.
(책 속으로)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략)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 201


#다시읽는책 독서 #독서일기 #독서노트 #서평 #한국여행
'Loving > 생산적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람이 보이는 건축 (0) | 2026.08.25 |
|---|---|
| 그림 그리는 건축가의 서울 산책 (0) | 2026.08.18 |
| 이방인 (0) | 2026.08.04 |
| 바람을 담는 집 (0) | 2026.08.04 |
|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0) | 2026.07.21 |